희망
오랜만에 독서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었던 만큼, 올해 추천받은 도서 중 단연코 최고였던 작품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순수함을 지닌 화자의 눈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각 인물과 상황이 왜곡 없이 전해지는 부분이었다. 자유로운 감상으로 작품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읽는 동안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주인공 우연이였다.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범주의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그것도 하나 아닌 여럿에 휩싸이며, 매일 밤 악몽으로 지새우는 그의 모습이, 너무도 힘들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절로 마음이 갔다. 그가 이성적인 인물로 보였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욕심 같아선, 도연과 찌르레기 아저씨의 부재를 나라도 대신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밖에, 찌르레기 아저씨, 강용우에 대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 아내의 슬기로움을 유치한 태도로 부정한 채 애를 가져놓고선, 불 보듯 뻔했던 결과의 원인을 외부로만 돌리는 모습이, 다소 어리석어 보여 아쉬웠다. 어쩌면 본인의 죄책감을 지우기 위한 본능적 행위였을지도. 물론 당시의 시대상을, 약 30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으로 보는 건 다소 무리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우연이의 형 도연을 보며, 이전에 읽었던 <동물농장>에서 정립하지 못한 `맞섬`과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할 수 있었다. 맞서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모두가 맞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희생으로 이룩된 `다음`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인간이 끝없이 맞서고 희생하는 이유는, 한정된 시간 속에 살아감으로 사상이 제한된 탓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범위에서 벗어났을 땐, 두 행위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내가 아닌, `내 사람들`이 굴욕적이고 끔찍한 상황에 처했을 때, 성인 같은 태도로 초연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어쩌면 아직까지 스스로 정립하지 못했던 데엔, 인생 경험의 부족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우연이와 그의 가족, 그리고 뽕짝아줌마, 찌르레기 아저씨, 10호실 노인과 민구까지, 모두 소설 속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마치 내가 정말 나성여관에 머무르며 그들과 일상을 공유했던 것처럼, 어딘가 실재하는 사람들인 듯 괜스레 정겹고 또 그리운 마음이 들어, 막연히,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싶다. 저자가 네 번째 작가의 말을 쓰며 우연이의 삶을 궁금해하고, 그가 그저 건재하기만을 바랐던 것처럼.
끝으로, 명작을 소개해 준 ㅅㅎ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