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분께서 추천해주신 위 영상을 보다, 이 책에 대한 소개가 가장 흥미로워 읽게 되었다. 특히,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돼지가, 결국에는 동물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인간과 동일하게 행동한다는 점이 유독.
책 속에는 개성 또렷한 각기 다른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다양한 동물 중에서 당나귀 벤자민이 가장 인상 깊었다.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나서지 않고 그저 침묵하며 방관하는 모습이.
이 책의 해설을 보면 <동물농장>의 이야기가 실은, 소련의 공산주의를 비유적으로 풍자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야기 속 전개만을 단순히 생각해보면, 1900년대 초 소련의 상황뿐 아니라 다양한 시점의,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충분히 빗대어 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면 오늘날의 사람들과도 별다름이 없어 보인다. 복서처럼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사람과 벤자민처럼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나서지 않고 그저 침묵하며 방관하는 사람, 또 네 마리의 암탉처럼 문제를 인지하고서 부당한 상황에 직면하여 맞서는 사람, 그리고 그 외 동물들처럼 문제를 인지할 듯하면서도 결국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저 수동적으로 사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을 오늘날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동물농장> 속 이야기는 인류가 바뀌지 않는 한, 절대 원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부당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상황을 타개하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사람들보다 더 현명해야만 타개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보다 현명하지 못하다면 그저 체념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사실 어쩌면 이러한 상황은 지금 내가 사는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외 동물들'처럼 그저 불평하며 살고 있거나, 혹은 '복서'처럼 내 노력 부족이라 생각하여 최선만 다하는 걸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벤자민은 문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에 침묵을 택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괴로워서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나 보다.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인간과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악질적인 돼지가 등장하듯, 오래전부터 이러한 악순환은 반복돼왔던 것 같다. 언제쯤이면 이 세상이 '슈가캔디 마운틴'처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뀔 수 있을까.
만약에 이러한 전개가 끝없이 반복된다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결국 돼지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보다 더 공부하여, 다른 사람들을 부리면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동물농장에는 왜 그러한 동물이 없는 걸까, 그러한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돼지와 다르게 행동하며 행복을 누리는 동물이(그나마 '몰리'이려나).
더 나은 앞날을 위해 부당한 상황에 맞서다 죽게 되었는데, 그 앞날에 또 다시 동일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러면 그러한 희생은 과연 가치가 있는 걸까?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동물들보다 '오래' 사는 벤자민은, 그러한 상황이 반복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문제를 알고 그저 방관한다기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상황을 볼 수 있었기에,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더라도 또다시 반복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침묵했나 보다.
그러면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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