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막연한 기대로 펼쳐보았다가, 취향에 꼭 맞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읽어보았다.
구성
사람, 조직, 사회, 사고라는 각각의 큰 틀 아래, 각 장에 부합하는 여러 철학가의 사상과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함께 소개하는 구성으로, 꼭지별 구분이 잘 되어 있고 내용이 명료하여, 별다른 난해함 없이 흥미를 유지한 채 완독할 수 있었다.
인상
; 르상티망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이라는 의미의 르상티망이라는 단어가 왠지 그럴싸해 보여 눈에 들었고, 이것의 전형이라는, 우화 '여우와 포도'에서의 포도를 대하는 여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게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는지 한번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르상티망과 별개로, 니체가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인물이라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다.
; 사제지간
고대 철학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순서대로 사제지간이었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앞으로 소프라노(소플아노)라고 기억해야지. 😂
; 영화 <이지 라이더>
가끔 책에서 언급되는 영화를 찾아보곤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러했다. 내용은 1960년대 미국, 자유를 찾아 떠도는 두 청년의 이야기로, 당시의 모습과 더불어 영화에서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매우 흥미로웠다. 어떤 감상평을 통해 알게 된, 서부에서 동부로 향할수록(마을의 분위기가 도시적일수록) 두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진다는 것도 꽤 인상적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태도가 위의 르상티망에서 기인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시대상, 추구하는 것조차 엄두 내기 힘든 '자유'를 보란 듯이 전신에 휘두르고 있으니, 신 포도로 여기지 않고선 도저히 못 배겼겠지.
; 끝까지 이의를 제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의견 교환이 기탄없이 오가면 오갈수록 의사결정의 질이 높아지고, 동질성이 높고 비슷한 의견과 지향성을 가진 이들이 모일수록 지적 수준에 관계없이 지적 생산의 질은 더 낮아진다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대기업에서 종종 어처구니없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는 예시를 보면서, 관료문화와 적폐 외에도 '동질성'이라는 요인이 있다는 걸 새롭게 알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최적의 의사결정을 위해선 기탄없는 대화와 더불어 다양성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주체적으로 최적의 해답을 구하기 위한 기술인 논리 사고가 강세인 오늘날에는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되어 가는 형편대로 결정하자'는 태도가 '포기'로 비칠지도 모른다. 경영 관리 측면에서는 철두철미하게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일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최적의 정답을 스스로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적 오만이 아닐까? [...] 모든 일이나 상황의 관련성이 점차 복잡해지고 한층 더 역동적으로 변해 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지적인 톱다운 사고에 의지해 최적의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는 지적 오만을 넘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바야흐로 최적의 해답을 최적의 접근법으로 찾으려만 하지 말고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휴리스틱으로 추구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대다."
무의식적으로 '최대'와 '최적'을 혼용했던 건 아닐까. 앞으론 무언가를 결정함에 앞서, 추구하는 방향이 최적인지 최대인지를 먼저 고려해 봐야겠다. 최적이라면, 만족할 수 있는 것을 정답으로 여기고, 만약 그러한 정도의 선택지가 복수일 때면, 그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 사람들은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르게 보이기 위해 돈을 쓴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 기호성을 갖지 않거나 또는 갖더라도 희박한 상품과 서비스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아실현적 소비는 시장 성장의 최종 단계에서 발현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때 자아실현이 자발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마찬가지로 '타자와의 차이'라는 형태로 규정된다면, 그 상품 나름대로 서비스가 어떤 차이를 규정하는지를 의식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만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는 어렵다."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차이적 소비'를, 나는 했던 적이 있던가. 마땅히 생각나진 않지만, 이후에 무언갈 개발하게 되면 꼭 한번 고려해 봐야지.
; 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
"이 수치를 보면 글래드웰이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주장에는 일종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어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이고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시하지 않으면 의미 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렇나 세상에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 남모르는 노력이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사고가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자."
결코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결과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노력의 '정도'는 사실 무관할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건 취미로 두고, 잘하는 것을 일로 삼으라는 격언도, 결국 이러한 이치였겠지.
여러모로 유익했던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책인 것 같다. 충분한 사색과 더불어 일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기에.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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